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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본가 , 백종원 한신포차 , 백종원 포장마차 , 백종원 일대기 5탄

by 이슈뉴스 2020. 4. 25.

IMF의 여파로 17억원의 빚을 지게 된 종원, 다행히 채권자들에게 기회를 얻어내긴 했지만 빚의 대부분이 사채와 일수였기 때문에 이자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편, 맛집으로 대박식당이 됐던 쌈밥집은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망해가고 있었습니다. 종원은 다시 식당을 되살리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는 일부터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단지를 보고 손님들이 하나 둘 찾아오자 식당운영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 한 명이 찾아와서는 IMF 때문에 힘든 시기에 뭘 해야할 지 모르겠다며 조언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때 종원은 후배에게 포장마를 한번 해보라고 권합니다. 사실, 그 당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고 퇴근길,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종원도 마찬가지로 포장마차를 자주 찾았는데, 포장마차 음식들은 생각보다 비쌌습니다. 포장마차를 좀 대형으로 하면서 깨끗하고 안전하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1998년 7월, 논현동 주차장 하나를 임대하여 커다란 실내형 포장마차를 만들고 과거 잠원동 부근의 포장마차 촌의 추억을 떠올리며 '한신포차'라 이름 붙이게 됩니다. 종원은 이곳만의 특별한 메뉴를 만들었는데, 손님들이 직접 조리하여 취향에 따라 먹을 수 있었던 닭발요리. 그런데 이 메뉴는 사람들이 포장마차에서 줄을 서서 먹을 만큼 인기를 끌어 한신포차 대표메뉴로 자리잡게 됩니다. 종원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장본뒤, 오전시간 동안 식자재를 준비 하여 쌈밥집에 이어 포장마차까지 12시간 내내 꼬박 일하고 잠은 4시간만 자는 생활을 2년 가까이 지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새,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종원에게는 아직 많은 빚이 남아 있었지만, 이자를 낼 수 있게 되면서부터 행복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종원에게는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삼시 세끼 뭘 먹어야 할 지 정하는것. 그러다 보니 종원의 머리 속에는 온통 음식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하면서 요리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종원은 의문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왜 해외에선 한국의 불고기보다 일본의 야끼니꾸가 인기가 더 좋을까' 그렇게 야끼니꾸를 연구하던 종원은 생고기에 소스를 부어 신선해 보이는 야끼니꾸에 비해 불고기는 오랫동안 양념에 재워둬서 외국인들이 보기에 신선도가 떨어져 보여서일꺼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종원은 한국 고유의 불고기 양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짧은 시간 안에 고기 양념이 제대로 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아주 얇게 썰어내는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런데, 등심이나 안심 같은 부위는 얇게 썰어내려고 하면 찢어져 버렸고 적절한 부위를 찾던 종원은 비교적 질긴 부위인 양지를 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최초의 '우삼겹'이었습니다. 이후 2002년 5월, 종원은 우삼겹에 여러가지 쌈 채소를 곁들인 한식 브랜드 본가를 런칭했습니다. 6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