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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백종원 식당 , 백종원 더본코리아 , 백종원 성공 4탄!

by 이슈뉴스 2020. 4. 25.

1996년 , 대패삼겹살에 대한 특허 신청을 하며 상표출원을 하게 됩니다. 종원은 어렵게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을 위해 상표를 악용하지 않으면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해줬고, 그 덕분에 대패삼겹살은 보통 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개발한 메뉴가 반응이 있자 신이 난 종원은 이번에는 자신만의 특제 간장 소스를 개발했습니다. 얇은 대패삼겹살을 찍어 먹기에 아주 맛난 소스였지만, 한 두번 찍어먹다 보면 돼지기름이 허옇게 둥둥 떠다녔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종원은 꿈속에서 고기를 구워서 소스에 찍어먹는 대신 고기를 소스에 먼저 찍은뒤 먹고 있었습니다. 곧장 가게로 가서 고기를 소스에 찍어서 구워먹게 되었고, 그렇게 맛과 기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시간이 좀 흐른 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원조 쌈밥집과 관련된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쌈밥집을 운영하던 종원에게 한 가지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 테이블에 세팅되던 다양한 종류의 쌈은 원형으로 된 채반에 담겨져 나왔습니다. 종원은 손님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다보니 손님들이 원형으로 된 채반에서 쌈 채소를 고르기 위해서 뒤적뒤적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렇게 뒤적뒤적하며 건드려진 채소는 손님들에게 외면받고 버려지기 일쑤였습니다. 종원은 손님들이 쉽게 쌈 채소를 고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원형 채반에 채소를 순서대로 둥글게 담으려고도 해봤지만 , 너무 고난도 작업이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쌈을 담을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쌈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떠오른 아이디어, 그냥 순서대로 나란히 담으면 되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고 특수 제작한 채반에 쌈 채소를 순서대로 담아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어떤 직원이든 채소 순서만 적어두면 손 쉽게 담을 수 있었고, 손님들도 편하게 쌈 채소를 골라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사각 쌈 채반 역시 특허 신청을 하여 디자인 등록을 했습니다. 1994년 본의아니게 시작한 쌈밥집이 대박을 나며 재정적인 여유가 생긴 종원은 다른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계쩍인 무역가가 되는것. 전역 후 시작한 인테리어 회사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다리였습니다. 그는 누가나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넓은 마당이 달린 그림 같은 집을 꿈꾸고 있었고, 그래서 식당에서 번 돈을 몽땅 목조주택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미국 자재공급업체 PGL사와 계약을 맺고, 목재 무역을 하기 시작했는데, 떄마침 1994년부터 우리나라에 목조주택 붐이 일어난 것입니다. 종원은 쌈밥집의 운영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목조주택 사업에 집중했습니다. 시공사들은 자재가 부족하면 종원에게 연락했고, 남들보다 앞서 준비한 종원의 회사 '다인'은 자재 공급 뿐 아니라 목조주택 설계부터 시공까지 진행하며 연 매출 50억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1997년에 시작된 IMF외환위기. 종원은 이미 건설 계약을 맺었던 건들이 제법 있었고, 당시 환율이 치솟으며 자재비도 폭등하며 공사를 진행할수록 적자인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원은 계약대로 집을 지었고, 결국 17억의 빚만 남았습니다. 그를 잘 따르던 사람들은 한 순간에 빚쟁이가 된 종원을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고, 몸도 마음도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결국 극단적인 생각까지하며 홍콩으로 떠나게 됩니다. 삶을 마무리하기위해 왔지만. 골먹골목 맛있는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단 먹고 죽자는 생각에 여러 음식들을 먹으며 오히려 좋은 사업 아이템들이 떠오르게 되고,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종원은 채권자들을 모두 모아서 무릎꿇고 다시 기회를 준다면 식당을 해서 모두 갚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진심이 통했는지 채권자들은 모두 다 기회를 주게 되었고, 그렇게 절실한 마음으로 다시 쌈밥집 운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5탄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