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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김고은의 과거 , 김고은의 성장과정 총정리 1탄

by 이슈뉴스 2020. 4. 20.

김고은은 1991년 7월 2일 1남 1녀로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직장때문에 4살 때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살게된다. 미륜이라는 조금은 한적한 동네로 이사를 가며 10년동안 중국에서 생활을 했다. 미륜 거주 당시 한국 학교나 국제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현지 중학교를 다녔다. 이 때의 영향으로 중국어가 상당히 능숙하다. 그리고 집 근처에는 큰 호수가 하나 있었는데 호숫가에서 친구들과 말을 타기도 하고 강아지와 뛰어놀며 전형적인 한국 아이들과는 다른 유년 생활을 보냈다 어린 시절 중국 시골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이 지금의 연기 생활과 가치관 형성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 배우가 된 계기가 상당히 독특하다 원래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김고은도 영화 제작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시나리오 작가를 희망하며 계원예고에 진학했는데 그 당시 선생님께서는 "고은아 너는 배우를 하면 잘 할 것같아"라고 했다고 한다 3년간 같은 반 친구였던 류혜영과 함께 배우의 길을 함께 걷게 된다. 한예종에 입학한 후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한 시나리오를 건너받게 된다. 시나리오를 모두 읽은 김고은은 감독에게 곧장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이건 제가 감당할 자신이 없어요. 못하겠어요" 감독은 아쉬워했지만 몰아붙일 수는 없는 법. 조금만 더 생각해 볼 것을 권유했다고한다. 집으로 돌아간 후 부모님과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부모님의 답변은 의외로 "네가 노출이 무서워서 이 영화를 안 한다면 영화를 영영 못할지도 몰라"라며 오히려 진취적이었던 부모님에게 김고은은 용기를 얻어 영화 제의를 승낙하게 되는데, 그 영화의 제목은 은교였다. 전례 없던 높은 수위 순수하면서도 관능적인 소녀 은교 영화 은교는 그 해 최대의 문제작이면서도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다. 극 중 박해일의 연기도 압권이었고 단순한 성인 영화가 아닌 하나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분명한 수작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렇지만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일부 관객들의 악평도 잇따랐는데, 그 안에서도 김고은의 존재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고, 기대주로 떠오르게도니다. 대종상 신인여우상, 청룡영화상 여우신인상 , 2012년 한 해에 모든 여우신인상을 휩쓸게된다. 그렇게 인기가 급부상한 김고은은 차기작을 하지않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한예종 동기들과 연극을하고 잠시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냈다 다시 숨을 고른 김고은은 차기작으로 영화 몬스터를 선택하고 흥미로운 예고편과 동시에 김고은의 차기작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높은 연기 수준에도 불구하고, 약한 개연성과 후반으로 갈수록 붕 떠버리는 긴장감 때문인지 흥행에 참패하게된다. 곧이어 대배우 김혜수와 함께한 영화 차이나타운 에서는 지하철10번 보관함에 버려져 김혜수 손에서 자란 아이 역을 맡게 되는데, 이민자 출신이자 차이나타운의 사채업자 대모 김혜수의 대부업을 돕게된다. 어벤져스가 휩쓸고 있던 때에 유일하게 좋은 성적을 냈던 영화이지만, 평론가들의 반응은 누아르의 성반전이라는 소재가 참신하긴 해도 그게 전부라며 영화의 큰 약점으로 꼽았다. 극 중 김고은은 아쉽다는 평이 많았다. 다른 거친 배역들에 비해 평범한 캐릭터였으니 상대적으로 묻힐 수밖에 없었던것. 곧이어 협녀 칼의 기억과 성난 변호사, 계춘 할망 등 주연도 맡았지만 연달아 흥행에 실패하게된다. 김고은의 연기는 차츰차츰 성장해갔지만 흥행과는 연이 닿지않았다. 그에 따른 혹평도 피해갈 수 없었다. 부정적인 여론들을 반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이후 얘기는 2편에서..